쇼스타코비치 전기영화 - 증언 (Testimony) [한글자막] (6/15일 입고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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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월당 작성일15-06-11 18:34 조회6,139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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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전기영화 - 증언 (Testimony)
서거 40주년 기념 음악 전기 영화 ‘증언’
한글자막
‘증언’은 현대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진정한 작품으로서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편집자로서 팔머의 숙련된 기술과 영상과 음악을 병렬시키는 그의 훌륭한 솜씨는 ‘증언’을 일종의 축제로써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1960년대를 비틀즈에 열광하는 불교 수도승들과 뒤섞어 놓으며 충격을 불러일으킨 그의 첫 작품에서 기인한 강렬함이 연상되기도 한다. 작곡가에 대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팔머가 음악을 이해해 나아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했다는 점이다. 늙어서 백발이 된 작곡가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개인사는 오직 실내에서만 관찰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과정에서 교향곡 7번, 8번, 9번, 14번 등의 음악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극적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는 컬러 시퀀스에서는 작곡가가 사용한 유니즌 스코어와 같은 생생하고 선명한 음악적인 디테일(특히 5번 교향곡의 클라이맥스 장면과 같은)을 등장시켜 진정으로 놀라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Derek Elley, Films & Filming
솔로몬 볼코프의 유명한 쇼스타코비치 회고록에 기초한 음악전기영화 ‘증언’(Testimony)은 러시아의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1979년에 출판한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회고록이다. 볼코프는 이 책을 통해 쇼스타코비치가 사회주의와 조국애에 철저히 투신했던 음악가가 아니라, 스탈린과 소비에트 이념에 지속적으로 저항했었던 반체제인사였음을 역설했다. 냉전당시 이 책은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내용으로 인해 자유주의 진영에서 큰 반향을 얻었지만, 이후 이 책의 진위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과거와 같은 권위 대신 한 작곡가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정도로 위상이 급락하고 말았다. 본 DVD에 수록된 영화 ‘증언’은 1988년에 제작된 전기 영화로, 바로 볼코프의 책을 기초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따라서 다소 편향된 시각으로 인간 쇼스타코비치를 바라보고 있지만, 이 위대한 작곡가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뒷이야기들을 맛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영화 ‘간디’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영국의 명배우 벤 킹슬리가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연했으며, 루돌프 바르샤이/런던 필하모닉, 하워드 셀리, 칠링기리안 쿼텟 등의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연주한 이 작곡가의 대표작들이 영화의 적재적소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해외평]
“이것은 승리다” - The Observer
“이례적인 걸작이다: 의심할 바 없는 히트작” - The Sunday Times
“흥미롭고 감동적인 영화” - The independent
“귀와 눈을 현혹시키는 작품” - Evening Standard
[북릿 번역글]
‘증언’은 억누를 수 없는 인간 정신에 대한 목격담을 담은 영화다. 러시아의 위대한 애국자이자 음악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이야기로서 우리로 하여금 영웅성과 용기, 존엄성에 직면하도록 한다. 가장 화려했던 소비에트 시민이자 타임 매거진의 커버에 등장했던 유일한 소비에트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동료들 대부분이 총살당했던 스탈린의 공포정치 치하에서 살아남았다. 그의 음악은 자신의 시대를 감동적이고 열정적으로 서술한 것이지만, 자신에 대한 참된 증언으로 남아있는 것은 바로 극적이고 용감했던 그의 삶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상뜨 뻬쩨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러시아 혁명기에 살아남으며 20세 무렵에 이미 성공적이고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러시아 예술가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그 대표적인 면면을 보자면 메이어홀드와 마야코프스키, 에이젠슈타인 등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의 교향곡들과 오페라들은 무대에 올려지면서 격찬을 받았지만 곧바로 그의 경력은 추락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스탈린이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일간지인 프라우다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혼동에 불과하다고 평을 했다. 그는 매도당하고 굴욕을 당한 끝에 결국 사과를 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총살당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2차 세계대전 동안 포위당한 레닌그라드에서 러시아인들을 고무시키기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그 이전에는 그 어떤 작곡가도 이렇게 높은 대중적인 지지를 받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다시 한 번 스탈린은 그를 격하시키고자 했지만, 뉴욕에서 열리는 국제 평화 회의에 쇼스타코비치를 보내어 그로 하여금 러시아에서 탈출한 동료 음악가들을 비판하라고 강압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그 결과 쇼스타코비치는 동료 음악가들을 배신한 것에 대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은 채 평생토록 괴로워했다.
스탈린은 죽었고 쇼스타코비치는 살아남았다. 이제 그는 자신이 겪은 좌절과 고뇌를 가슴이 미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굴욕은 공공연하게 계속되었다. 공산당 중앙 위원회는 소비에트의 가장 유명한 아들이 망명할 것을 두려워 해 KGB로 하여금 항상 그를 감시하게 했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심장은 1975년 8월에 멈추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비추어지곤 했는데, 국가에 해가 된다던지 국가 권위의 기저를 흔드는 감정들을 분출함으로 인해 음표 그 자체에 위험한 요소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이 훌륭한 러시아인이자 모범적인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음악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인민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증언’은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그와 오랜 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동료인 솔로몬 볼코프에 의해 편집된 단행본인 ‘증언’을 토대로 적절한 선에서 변화를 준 영화로서 작곡가에 대한 정확한 전기적인 이야기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실상 그의 삶 가운데 음악적인 부분은 더 장대한 드라마인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의 관계를 위한 서브-플롯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증언’은 스탈린 치하에 있던 러시아의 이야기다. 정치인들과 장군들, 농민들과 시인들, 교회 지도자들을 포함한 약 3천 1백만 명 정도가 숙청당하고 총살당했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어떻게? 왜?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인으로서 어떤 대가를 치렀나? 놀랍고도 경외스러운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역사에 있어서 피로 물든 시대에 대한 고통과 항변의 비명이다. 당신이 이러한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 TONY PAL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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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당님의 댓글
풍월당 작성일박*선 1개 주문
qtetqyry님의 댓글
qtetqyry 작성일1장
nicnat님의 댓글
nicnat 작성일1장
kestrel님의 댓글
kestrel 작성일1장 예약합니다.
풍월당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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