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Alia Vox 새음반 입고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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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풍월당 작성일22-09-23 20:06 조회2,30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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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a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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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교향곡 8미완성’, 교향곡 9그레이트’ [2SACD]

르 콩세르 데 나시옹, 조르디 사발(지휘)

 

수록곡

SACD1] 교향곡 8B단조 D.759 ‘미완성’ ( I. 14:42 II. 9:57)

SACD2] 교향곡 9C장조 D.944 ‘그레이트’ ( I. 15:25II. 13:55III. 16:27IV. 15:28 )

 

2020년과 21년 베토벤 교향곡 2개의 앨범 전곡 레코딩으로 클래식계를 뒤흔들었던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

조르디 사발은 초기 낭만파 레퍼토리를 대하는 우리의 비전을 새롭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 이후 그의 음악 인생 첫 번째 슈베르트 앨범을 발표한다.

사발은 과거 전통의 무게에서 벗어나 이 레퍼토리에 필요한 역동성과 섹션의 밸런스 그리고 음색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는 음악적 언어의 창작 과정에서 내적이고 영적인 차원과 이러한 종류의 변용(變容)을 다루는 슈베르트의 능력에 언제나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라고 말하며 이번 앨범에 Transfiguration(변용)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현대 음악사를 살아온 마에스트로는 통찰력과 해석으로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슈베르트를 선보인다.

 

2 Hybrid SACD Multi-ch

녹음: 2021926~29,카탈루냐


*조르디 사발의 슈베르트 음반내지 발췌글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하면

그것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 하면

그것은 사랑이 되었다."

-프란츠 슈베르트, 1822Mein Traum (나의 꿈) -

 

베토벤과 함께 열정적인 2년을 보낸 직후인 2021년 여름, 우리의 관심은 고악기 오케스트라인 르 콩세르 드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과 함께하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과 9번으로 향했고, 그에 따라 고악기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젊은 음악가를 비롯하여 전 세계와 유럽 각국의 음악가 60여 명이 모이게 되었다.

 

베토벤의 창작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 비범한 상상력과 혁명적인 영감이었다면, 슈베르트의 경우에는 작곡가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관계가 상당히 친밀하고 밀접했다는 점에 가장 이끌렸다. 음악적 언어의 창작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내적이고 영적인 차원과 이러한 종류의 변용을 다루는 슈베르트의 능력은 언제나 놀라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18243월 자신의 일기에 내 작품은 나의 음악적 지식과 고통의 결실이다라고 쓴 문장은 이를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재능을 펼치기 위한 창작 과정의 전제 조건은 바로 개인의 위대한 자각과 성숙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세 음악 천재(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삶과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배경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모차르트는 17648세의 나이로 자신의 첫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마지막 교향곡 3개를 32세였던 1788725일과 825일 사이에 완성했다. 베토벤은 첫 교향곡을 29세에 작곡했고 마지막(9) 교향곡을 50세에 작곡했다. 반면 슈베르트는 첫 교향곡을 16세인 1813년에 작곡했고 미완성 교향곡을 25세인 1822년에, 마지막 교향곡인 '그레이트' 교향곡 C장조를 31세인 1828년에 작곡했다.

 

베토벤이 작곡한 9개의 교향곡은 소나타 형식의 경지를 극단적인 방향의 전환 없이는 능가할 수 없을 정도로 끌어올렸다. 슈베르트는 노력 끝에 자신만의 해법을 성공적으로 찾아냈다.

 

"넌 이미 많은 것을 이뤘지만 앞으로 위대한 것들을 더 많이 이뤄낼 거야"라고 쓴 친구 요제프 폰 슈파운(Joseph von Spaun, 1788-1865)의 편지에 15세였던 슈베르트는 이렇게 회신했다. "내 마음속 은밀한 곳에서는 아직도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베토벤 이후에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역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다양한 교향곡이 완성되던 1817~1823년 사이의 시간적 유사성과 작곡가들의 연령차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당시 베토벤은 50살이 넘은 나이에 혁명적인 스타일의 교향곡 작곡가이자 창작자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면서 마지막 합창 교향곡을 작곡하던 시기였지만, 1821~1822년 사이 슈베르트는 교향곡 작곡가로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고 25세였던 1822년에는 미완성 교향곡 B단조를 작곡했다. 완성된 첫 두 악장인 알레그로 모데라토와 안단테 콘 모토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부 또는 전체가 오케스트라로 편곡된 스케르초의 앞부분 20마디가 초고 형태로 존재하며, 오케스트라로 편곡되지 않은 동일한 스케르초를 트리오 시작 부분까지만 완성한 스케치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이 교향곡은 실제로 미완성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미완성이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868년 친구인 요세프 휘텐브렌너(Joseph Huttenbrenner)는 이렇게 썼다. “내가 이미 여러 해 동안 이 교향곡을 가지고 있었고, (1853) 안젤름(Anselm)이 이 곡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다. 슈베르트는 그라츠 음악협회(Graz Musical Society)에서 준 명예졸업장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협회와 안젤름에 증정하기 위해 이 곡을 내게 주었다. 내가 이 명예졸업장을 슈베르트에게 전달했다. 나와 동생은 교향곡 B단조가 베토벤 교향곡에 견줄 수 있다고 여겼지만, 아직 어느 오케스트라에서도 이 곡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나 역시 전적으로 공감하는, 슈베르트의 인생과 업적에 관해 심오하고 깨달음을 주는 브리지트 마생(Brigitte Massin, 1927~2002)이 한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급박하게 쏟아지는 높은 수준의 수많은 아이디어로 인해 슈베르트는 작업하던 곡을 중단하고 다른 작품을 시작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렇게 풍부한 아이디어가 서로 경쟁한 것이 미완성 교향곡의 의문에 대한 다소 만족스러운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완성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알레그로 모데라토와 안단테 콘 모토의 두 악장을 하나로 이어주는 특별하고 분명한 통일성으로 인해 이 교향곡은 현재 완성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브리지트 마생은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독일 음악학자 아놀드 셔링(Arnold Schering, 1877~1941)에게는 알레그로와 안단테 사이의 이러한 통일성이 너무도 분명하고 의도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는 미완성 교향곡이 슈베르트가 18227Mein Traum(나의 꿈)이라는 제목의 2개 파트로 쓴 동시대 문학 작품을 음악적으로 변용한 것으로 보았고, 이를 통해 작품에 대한 미완성의 본질을, 또는 그 완결성을 설명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교향곡에서 3개월 전 Mein Traum에서 표현한 것처럼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음악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한 적은 없었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 하면

그것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 하면

그것은 사랑이 되었다."

 

베토벤이 1817~1823년 사이에 작곡한 마지막 교향곡은 182457, 작곡가인 베토벤과 카펠마이스터인 미하엘 움라우프(Kapellmeister Michael Umlauf)의 지휘 하에 빈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은 이 공연을 끝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후 3년 동안 여러 질환을 겪으면서 집에만 머물다가 1827326일 모든 이들의 인정과 성공을 거머쥐고 파란만장하면서도 창의적이고 치열했던 54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베토벤이 사망하고 1년 반 후인 18281116일 프란츠 슈베르트도 가까운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건강이 좋지 못한 슈베르트는 앓고 있던 장티푸스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레이트 교향곡 C장조를 완성한 후 몇 달이 지나고 겨울나그네(Winterreise) 두 번째 파트의 수정이 채 끝나기 전 슈베르트는 서른 두 번째 생일을 한 달 반 앞두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1828년 초로 돌아가 보자(1827326일에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다). 브리지트 마생은 이렇게 썼다. “창의성을 꽃피우고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슈베르트가 내면의 방해물과 수년간의 망설임을 극복하고 성인이 된 후 처음 완성한 '그레이트' 교향곡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음악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때였다. 그때 나이가 31살이었다. 비교하자면 베토벤이 첫 교향곡을 작곡한 때(29)와 거의 비슷한 나이였다."

"하지만, 슈베르트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미완성 교향곡 B단조와 연결선상에 있는 작품은 이전의 어떤 교향곡보다 교향곡 C장조라고 할 수 있다. 교향곡 C장조가 그의 전작과 비교해 깊은 내면의 사고를 교향곡으로 해석하여 표현했다면, 이전 6개의 교향곡은 본질적으로 외향적인 편에 속한다. 교향곡 B단조를 작곡하던 시기에 병상에서 지내면서 단조롭고 정제된 심리에 익숙했던 슈베르트로서는 교향곡이라는 언어를 통해 내면 세계의 미스터리를 해석해야 하는 모순과 타협하지 못했으나, 교향곡 C장조에서 이런 모순이 해결되었다. [] 두 작품의 첫 아홉 마디는 구조적인 유사성(물론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지만)이 상당히 두드러져서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미완결성에 대한 도전을 마주해야 한다는 작곡가의 욕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B단조에서 C장조로의 변용에서 그가 마주한 도전과 그 궁극적인 승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조르디 사발

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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