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KNON TK 11-250 18세기 프랑스 음악 - 쿠프랭, 뒤파르, 오테테르, 마래 연주: 마레케 미센(리코더), 아너르 빌스마(첼로 피콜로), 피터르 비스펠베이(첼로), 봅 판 아스페런(하프시코드) 태양왕의 거처, 베르사이유 궁에서 음악은 단지 예술 이상의 것으로 강력한 정치 선전 도구이기도 했다. 루이 14세(1638~1715)가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전 까지 모든 예식에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베르사이유 궁에는 많은 음악가들이 상주했는데 그 수가 많을 때에는 2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베르사이유 음악가들은 역할에 따라 몇 개의 악단으로 나뉘었는데 일명 기마대 합주단이라고 불리는 ‘Musique de la Grande Écurie’는 트럼펫, 오보에, 드럼, 코르네, 백파이프 등이 중심이 된 군악과 야외 음악 연주 단체였다. ‘Musique de la Chapelle Royale’은 궁정 교회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앙상블로서 성악, 현악, 오보에, 플루트 등으로 구성되었다. 유명한 ‘Vingtquatre Violons du Roy’ 일명 왕의 24 바이올린단은 행사음악과 극장음악 등을 연주했다. 24 바이올린단에서도 엄선된 연주자들이 좀 더 규모가 작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Petits Violons du Roy’ 일명 소 바이올린단을 구성했다. 24바이올린단을 ‘Grande bande’라고 부른 것에 대해 소 바이올린단은 ‘Petite bande’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그리고 모든 음악가들 가운데 최고의 연주자들은 왕의 침소에서 연주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Musique de la Chambre’로서 가히 파르나소스 산의 정상이자 태양왕을 둘러싼 뮤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쿠프랭 가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프랑수와 쿠프랭(1668~1733)은 1700년경 클라브생(하프시코드)연주자로서 ‘Musique de la Chambre’에 선발되었다. 그 즈음 바이올린 소나타를 위시한 이탈리아 음악이 프랑스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이탈리아 음악과 프랑스 음악이 공공연하게 대립했다. 이를테면 이론가 프랑수와 라그네는 프랑스 음악이 우아하고 감미롭고 유연한데 반해 이탈리아 음악은 거칠고 바보스럽다고 혹평하고 있다. 쿠프랭은 특히 코렐리의 음악을 존경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 음악을 조화시키려 했지만 이처럼 격렬한 반감 때문에 처음에는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쿠프랭은 륄리 찬가와 코렐리 찬가를 통해 프랑스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을 함께 칭찬하고 왕궁의 콩세르(Concerts Royaux)와 신 콩세르(Nouveaux Concerts)를 통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음악을 조화(les gouts-reunis)시키려고 했다. 신 콩세르 중에서 아홉 번째 콩세르는 아예 ‘ Ritratto dell'Amore’(사랑의 초상)이라는 이탈리아 어 부제가 붙어있기도 하다. 마랭 마래(1656~1728)는 생뜨 꼴롱브의 제자로서 1679년 ‘Ordinaire de la Chambre du Roi pour la Viole’이 되었다. 마래는 프랑스 파를 대표하는 비올 마스터로 500곡이 넘는 비올 작품을 남기고 있지만 또한 작품집 (1723년)에서 바이올린과 비올을 함께 사용하며 이탈리아 양식을 탐구하고 있다. 중 가장 유명한 작품 ‘Sonnerie de Sainte Genevieve du Mont de Paris’에서 성당의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비올 연주위에서 광시곡풍으로 움직이는 바이올린이 인상적이다. 자크 오테테르(1680?~1761)는 명문 목관악기 제작 가문 출신으로 쿠프랭이 베르사이유에 들어간 몇 년 뒤에 리코더, 오보에, 플루트 주자로 ‘Musique de la Chambre’의 일원이 되었다. 오테테르 가문은 17세기부터 목관악기 제작 및 연주로 활약했는데 플루트, 오보에, 리코더, 바순, 백파이프 등 거의 모든 바로크 목관악기 완성에 기여했다. 자크 오테테르는 오테테르 가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그가 쓴 (1707년)은 플루트, 리코더, 오보에를 위한 최초의 교본이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여 ‘le Romain’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프랑스 모음곡 양식에 코렐리의 스타일을 부분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태양왕이 빛을 잃자 중앙 집권적인 베르사이유 체제는 급속히 붕괴되었으며 거대한 국가적 이상을 위해 울려 퍼졌던 음악은 이제 귀족과 부르주와의 작은 살롱으로 숨어버린다. 이탈리아 음악에 대한 격렬한 저항은 이탈리아 음악을 답습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마침내 프랑스 예술의 심장부 파리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성공을 거둔 것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리코더 연주자 마레케 미센은 현재 네덜란드 리코더 음악계에서 교육과 연주 양쪽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인물이다. 텔레만의 1734년 소나타의 세계 최초 전곡 녹음(ETCETERA)등 바로크 음악 연주에 정평이 있다. 프리드리히 폰 휘네와 고 프레드 모건 등 현대 리코더 명장들이 제작한 소프라노, 알토, 보이스 플루트로 18세기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전해준다. 아너르 빌스마는 두말할 필요 없는 현대 바로크 첼로의 거장이다. 덴 학 왕립 음악원 출신으로 프란스 브뤼헨, 얍 쉬뢰더, 귀스타프 레온하르트 등과 함께 쿼드로 암스테르담을 결성해 활동하면서 바로크 악기 연주에 인생을 바치기 시작했다. 5현 첼로 피콜로(티롤 1770년경)로 마래와 쿠프랭의 작품을 연주한다. 피터르 비스펠베이는 빌스마와 윌리엄 플리스라는 두 거장에게 각각 바로크 첼로와 현대 첼로를 사사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시작하여 현대 레퍼토리로 그 연주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사용악기는 비스펠베이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바락 노먼(1710년) 첼로이다. 봅 판 아스페런은 레온하르트 제자 중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인물로서 스베일링크 음악원 교수로서 교육과 연주 양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연주한 악기는 타스캥 하프시코드의 복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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