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왜 고전주의 음악은 서양 음악사의 황금기로 불릴까? 음악을 단순한 감정에서 해방시켜 하나의 ‘언어’로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하면서도 극적인 역동성과 우아함을 갖춘 고전적 양식은 소리로 된 언어처럼 소통과 발전이 가능한 체계였다. 이러한 체계의 힘은 음악을 관습과 제의에서 해방시켰고, 최적의 균형과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유머와 자유분방함, 격렬한 에너지에 이르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갖추게 만들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이렇게 음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클래식 음악의 예술성을 위대함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이 책은 세 사람의 음악가가 어떻게 음악의 역사를 뒤바꿨는지를 흥미롭고 심도 있게 조망한다.
찰스 로젠의 『고전적 양식』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주의 음악의 내부를 경험케 해주는 귀중한 안내서다. 이 책은 물론 작곡가와 전문 연주자, 음악학자들에게도 유용한 학술적인 저서다. 그러나 이 책은 동시에 더 많은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왜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울리는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은 어떤 공통점, 어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는가. 그동안 음악을 들으며 이 같은 궁금증을 가져보았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발견의 기쁨과 보다 깊이 있는 감상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인가?
서양 음악사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고전주의의 트로이카로 불리며 존경받는다. 찰스 로젠은 왜 당대의 많은 작곡가들 가운데 이 세 사람이 독보적이었는지를 밝힌다. 또한 이 세 사람의 대가들을 하나의 사조로 묶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의 진정한 업적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논증한다. 그 핵심은 조성 체계에 바탕을 둔 ‘음악 언어’다. 여기서 ‘음악 언어’란 내적인 논리성과 극적인 효과를 동시에 얻어낼 수 있는 작곡 방식을 뜻한다. 과도기적이고 몰개성적이었던 18세기 말의 양식들에 비해 고전주의의 음악 언어는 더 객관적이면서도 작곡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주었다. 조성 및 화성의 성격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룬다는 데서는 세 사람의 공통적인 객관적 태도가 나타나지만,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세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이 부각되었던 것이다. 철저한 객관성의 토대 위에서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일은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형식 안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알았다. 이것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보다 탁월한 점이었다.
세 사람이 함께 매진했던 대표적인 형식이 바로 소나타 형식이었다. 그런데 찰스 로젠은 이 소나타 형식이 반드시 따라야 할 하나의 법칙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실험의 장이었음을 강조한다. 소나타 형식은 으뜸조와 딸림조 사이의 관계를 이용해 극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포괄적인 작곡방식이었다. 으뜸조에서 거리가 먼 딸림조로 이행했다가 다시 으뜸조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주제의 개수, 도입부의 유무, 각 부분의 길이와 비율 등은 모두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소나타 형식의 목적은 화성의 안정감과 불안감을 잘 이용하여 듣는 사람이 극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곡가는 재료가 되는 음들을 조직하여 관계를 만들고, 형식을 구축하고 전체의 발전 방향을 정한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귀에 들리는 연극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그 곡의 개성이 된다.
고전주의의 트로이카: 저마다의 개성
로젠이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렇게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은 이러한 목적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소나타 형식을 활용하는 방식과 스타일은 서로 달랐다. 하이든은 재료와 형식 사이의 치밀한 연관성과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인다면, 모차르트는 폭넓은 화성 운용이 돋보이고, 베토벤은 형식을 밀어붙이고 확장해내는 힘이 특별하다. 각각이 환기하는 정서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하이든의 핵심적인 정서는 친숙함일 것이다. 로젠은 호프만을 인용해 “하이든을 듣는 것은 시골길을 산책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동시에 “가장 감동적인 것은 이런 단순함이며, 도시의 독자들에게 예민한 향수를 자아내는 것은 시골의 단순함이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그와 같은 교묘한 단순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이든의 유머 또한 포함된다. 하이든은 음악가 사회와 일반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동시에 받은 작곡가였다.
한편 모차르트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음악적 순수함을 최고의 가치로 둔다. 모차르트는 “음악은 아무리 형편없는 상황에서도 귀에 거슬리게 들려서는 절대로 안 되며 청자를 즐겁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음악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로젠은 이를 “음악의 유혹하는 물리적 힘을 모차르트만큼 강렬하고 폭넓게 사용한 작곡가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로 다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문학과 결합된 장르 오페라를 작곡할 때도 순수한 음악적 균형 감각을 발휘했고, 기계적으로 형식을 다루거나, 문학의 내용에 섣불리 기대는 대신, 조성의 성격과 극의 상황에 전체를 정교하게 설계할 줄 알았다. “음악적 사건과 극적 사건이 일치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양식에서 빛나는 위업”이다.
베토벤의 개성은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와 탐험에서 나타난다. 베토벤은 아마도 음악의 이런 탐구적 기능을 다른 모든 기능보다 우위에 둔 최초의 작곡가였다. 즐거움, 가르침, 때로는 표현보다도 탐험을 우위에 두었다. 베토벤의 가장 큰 혁신은 양식을 전례 없이 확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떤 작곡가보다 당대 조성 언어에 잠재된 가능성을 잘 이해했고, 그것을 활용하여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법을 알았다. 로젠은 이러한 작곡가마다의 개성을 다양한 악보 예시와 상세한 분석을 통해 탁월하게 논증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감각적으로만 음악을 들어왔던 많은 감상자들은 작곡이라는 활동에 대해 새로운 상(傷)을 얻게 될 것이다. 작곡가는 그저 자기감정에 빠져 곡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곡은 고도로 치밀하게 계획된 합리적 과정이다. 그렇다면 감상자들 또한 감정에 치우친 듣기를 넘어서서 - 비록 전공자가 아니라거나 악보에 밝지 않다는 한계를 지닌 경우에라도 - 음악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요소를 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합리적인 듣기에 큰 도움을 준다.
장르에 관하여
이 책은 또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을 방대하게 해설하면서 고전주의 음악의 핵심 장르들을 소개한다. 하이든은 교향곡, 현악사중주, 피아노삼중주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냈다. 작은 동기에서 전체 구조를 만들어내는 작법을 고심한 끝에 이룬 성취였다. 교향곡, 현악사중주 등은 각 동기 간의 연관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장르다. 그러나 하이든은 고도로 논리적인 작품을 쓰면서도 결코 논리 자체에 갇히는 법이 없었다. 악보를 벗어나 실제로 들리는 효과를 예민하게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모차르트를 다루면서 로젠은 그가 오페라 부파에서 이룬 성취를 강조한다. 오페라 부파는 고전적 양식의 여러 원칙들을 이끌어낸 장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음악 장르적인 측면 뿐 아니라 사회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통찰이다. 곧 즐거움, 아름다움, 인간다움을 더 잘 다루려고 애쓰다 보니 이전의 관습을 벗어나 더 많은 자유, 표현력을 갖추는 비법을 찾아내게 되었다는 것이 그 골자다. 오페라 부파는 통상 희가극이라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 희극이란 그저 우스꽝스러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로부터 벗어난 자유분방함을 의미하는 바가 더 크다. 모차르트는 연극이라는 음악 외적 조건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부파의 분위기가 주는 다채로운 감정과 표현적 자유를 탁월하게 표현해내는데 성공했다.
베토벤의 핵심 장르는 교향곡, 피아노소나타, 현악사중주다. 로젠은 ‘모차르트의 혼을 하이든의 손에서 넘겨받은’ 베토벤의 발전 과정을 주요 작품들을 통해 상세하게 분석한다. 베토벤은 특히 그의 말년 양식을 통해 미답지의 땅에 도달한다. 로젠은 이렇게 지적한다. “조각가들은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돌 안에 숨겨진 형태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아마도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미켈란젤로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베토벤은 음악 언어 안에 파묻혀 있는 의미와 감정들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은 형식을 이용하면서 형식 너머의 의미를 가리켰다. 고전주의 음악 언어를 하나의 심오한 철학적 사유로 심화시킨 것이다.
진지한 음악 감상의 오랜 동반자가 될 책
물론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음악가, 전문연주자, 음악학자들을 염두에 둔 책이어서 방대한 악보 예시가 있고 분석도 치밀하다. 그러나 도전 못할 책은 결코 아니다. 여러 음반과 음원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읽고 누릴 거리가 많은 책이다. 더욱이 명료하고 깔끔한 문장, 재기발랄한 비유가 우리가 익히 듣고 있던 음악 속의 비밀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밝혀준다.
차근차근 음반 곁에 두고 읽을 책이다. 괴테는 한때 클레멘스 브렌타노와 아힘 폰 아르님이 편찬한 민요 모음집 『소년의 마술 뿔나팔』을 두고 “작곡가와 음악 애호가의 피아노 위에 올려두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의 글을 쓴 바 있다. 우리의 현 시점에서 -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 이 책 또한 비슷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한 번에 독파하는 것보다는 내게 익숙한 작품을 들을 때 해당 부분을 찾아 읽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전공자가 아니라도 음악 듣기가 보다 체계적이 되고 깊어지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찰스 로젠은 여러 애호가들에게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하며 많은 성과를 남긴 작가요 음악학자이며 『고전적 양식』은 그의 대표작이자 전미도서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동안 음악을 들어오면서 숱하게 가졌던 질문들을 떠올려 보라.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세 사람을 고전주의로 묶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이 책은 제시한다. 그 답은 로젠이 공들여 논증하는 고전적 ‘음악 언어’에 있다. 음악이 감정만이 아니라 논리와 일관성을 갖춰 모종의 의미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는 그의 설명은 우리의 음악 이해와 감상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말하자면 고전적 양식은 ‘합리’와 ‘정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음악 언어였다. 이 언어는 변화하고 역동하는 시민 사회에 적합하게 음악을 탈바꿈시켜 이후의 예술과 문화를 몰라보게 바꾸는 원동력이었다.
■ 목차
초판 서문
개정판 서문
감사의 말
참고자료에 관하여
악보에 관하여
1. 서론
1장 18세기 말의 음악 언어
2장 형식의 이론들
3장 양식의 기원들
2. 고전적 양식
1장 음악 언어의 일관성
2장 구조와 장식음
3. 1770년의 하이든부터 모차르트의 죽음까지
1장 현악 사중주
2장 교향곡
4. 오페라 세리아
5. 모차르트
1장 협주곡
2장 현악 오중주
3장 코믹 오페라
6. 모차르트의 죽음 이후 하이든
1장 대중적 양식
2장 피아노 삼중주
3장 종교음악
7. 베토벤
1장 베토벤
2장 후기 베토벤과 그의 어린 시절의 관습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인명 찾아보기
음악 작품명 찾아보기
■ 책 속에서
7~8쪽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은 같은 시대의 평범함을 배경에 놓고 봤을 때에야 진가가 드러난다는 믿음이 있다. 다시 말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극적으로 들리는 것은 동시대 예술가들이 대중에게 인식시킨 패턴을 그들이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예컨대 하이든의 극적 놀라움은 우리가 점차 거기에 익숙해짐에 따라 갈수록 효과가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음악 애호가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을 인식한다. [...] <영웅> 교향곡의 첫 악장은 언제까지나 광대하게 들릴 것이고, <레오노레> 3번 서곡의 트럼펫 소리는 언제 들어도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대감이 작품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내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음악 작품은 자신의 방식을 스스로 정한다. 이런 방식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드라마가 전개되는 맥락이 각각의 작품마다 어떻게 창조되는지가 이 책에서 살펴볼 핵심 주제다.
56쪽
음악사, 아니 모든 예술의 역사를 아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대체로 가장 평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예외적인 것이 우리에게 최대의 관심사가 된다는 점이다. 한 예술가의 작품 내에서도 그의 개인적 ‘양식’을 특징짓는 것은 평범한 작업 방식이 아니라 그의 최고의 성취, 가장 개인적인 성취다.
58쪽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개인적인 인연이나 심지어 서로 주고받은 영향과 교류도 아니라(둘 다 있었지만), 그들이 만들고 변화를 주고자 많은 노력을 했던 음악 언어에 대한 이해가 같았다는 점이다. 이들 세 작곡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 표현의 이상도 직접적으로 충돌할 때가 많았지만 자신들의 작품 대부분에서 비슷한 해결책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양식의 통일성은 사실은 허구이지만 작곡가들 스스로가 여기에 힘을 보탠 허구인 셈이다.
94~95쪽
간략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이 시기에 작곡가는 극적 놀라움과 형식의 완벽함 가운데 하나를, 표현성과 우아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둘 다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각자 그리고 함께 극적 효과가 놀라움을 주면서도 논리적으로 타당한 양식을, 표현성과 우아함이 손을 맞잡은 양식을 만들어내면서 비로소 고전적 양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105쪽
18세기의 첫 30년이 끝날 무렵에 극적 표현은 디테일과 화성적, 리듬적 텍스처뿐만 아니라 작품의 큰 구조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극적 움직임을 담은 통사적 예술이 가능해지면서 극적 상황과 감정을 보다 정적으로 담은 예술은 뒤처지게 되었다. 시각 예술에서 사용하는 ‘고전적’, ‘바로크적’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얼마나 다른가!
153~154쪽
거의 모순될 만큼 복잡한 이런 감정은 고전적 양식이 이룬 또 하나의 위업이다. 18세기 초 이후로 달라진 것은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표현의 어휘다. 바로크 작품은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이 확연히 덜 복잡하다. 때로는 몹시 통렬한 감정을 나타내며 고전적 양식으로는 한층 표현하기 어려운 광활한 느낌도 낼 수 있지만, 대체로 더 직접적이고 항상 더 통합된 모습이다. 고전적 어휘의 감정적 복잡함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E.T.A. 호프만이 <코지 판 투테>에 대해 말했듯이 이제 음악에서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런 복잡함은 고전적 양식의 화성 관계에 크게 의존한다. 프로토-고전적(로코코, 매너리즘, 초기 고전적) 양식의 작곡가들이 확대해 놓은 으뜸조와 딸림조의 긴장을 이어받아 5도 순환이라는 화성의 체계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 새로운 감정의 언어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였다.
213쪽
작품의 흐름, 발전, 극적 경로, 이 모든 것이 재료에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 재료에 충전된 힘을 방출하도록 하여 음악이 더 이상 바로크에서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안에서부터 추진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바로 이것이 하이든이 음악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이다. 그는 조성 체계 내에서 음악적 재료가 일으킬 갈등의 가능성을 알아보았고, 이것을 잘 활용하면 에너지를 만들고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것은 그의 형식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을 설명해준다. 그의 작곡 방식은 재료에 따라 바뀌었다.
216쪽
하이든의 작품에서 재료를 언급하지 않고 구조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제2주제, 경과부, 마무리 주제, 조바꿈의 범위, 주제들의 관계, 이 모든 것의 논의는 특정 작품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공허하다. 작품의 성격, 독특한 소리, 모티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하이든은 가장 장난기 많은 작곡가로 꼽히지만, 그의 경박함과 변덕스러움은 결코 공허한 구조의 요소를 이루지 않는다. 대략 1770년을 지나고 나서는 그의 재현부는 제시부가 불규칙적인 해결을 요구할 때에만 ‘불규칙적’이며, 그의 조바꿈은 앞선 대목에 놀라움의 논리가 이미 내재되어 있을 때에만 놀라움을 안겨준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이든은 재료가 곡을 이끌어가는 힘에, 혹은 거의 비슷한 뜻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에 관심이 있다.
247쪽
우리 시대에는 공적 예술 형식과 사적 예술 형식의 경계가 흐릿하지만, 하이든의 교향곡들은 사중주곡들과 달리 연주자가 아니라 주로 청중을 겨냥한 것이다. 교향곡과 실내악의 이런 구분은 하이든의 생애에 갈수록 두드러졌다. 초기 교향곡들의 여러 독주 악구는 청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만큼 연주자가 즐기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하이든이 오랜 세월 일했던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좁은 음악 세계에서는 중요한 음악가들에게 기교를 과시하는 기회를 자주 부여하여 만족시키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1760년대에는 에스테르하지 말고도 몇몇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었지만, 당시 관현악곡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친밀한 성격의 곡으로 구상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사반세기에 이르면 작곡가들은 대단히 큰 앙상블의 가능성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했고, 공공 음악회 문화라는 새로운 현실이 그들의 음악에 반영되었다.
255쪽
하이든 초기 양식의 최고 성과인 맹렬하게 몰아치는 극적 힘을 노골적인 단순함, 복잡한 통제의 거부, 가끔 단발성 효과를 위해 리듬 패턴을 과감하게 무너뜨리는 배짱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거칠지만 절박한 규칙성과 눈부신 기이함을 이렇게 자주 대놓고 대조시키는 데서 어떻게 더 풍부한 예술이 생겨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1770년대 초의 양식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미덕을 포기해야 했다. 하이든이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보다 규율 잡힌 양식을 얻는 과정에서 그토록 감탄을 자아냈던 맹렬한 에너지가 그의 예술에서 사라진 것은 어쩌면 애석한 일이다. 그의 후기 양식도 그와 같은 맹렬함을 지지할 수 있었음을 베토벤이 거의 곧바로 입증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이든의 양식을 변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든 희극의 규율은 그의 음악적 개성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261쪽
그럼에도 1773년부터 1781년까지 다양하고 수준이 들쑥날쑥한 스무 곡의 교향곡이 만들어졌다. 하이든이 보인 발전의 대략적인 양상은 명확하다. 그를 대표하는 특징인 폭발적인 영감이 점차 자제됐으며 표층이 매끈해졌다. 하지만 1770년대 말에 가장 의미심장한 성과라면 연속성과 분절의 종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는 바로크의 단조로운 리듬 텍스처에 기대지 않고 강세와 종지를 결합하여 몰아치는 움직임의 감각을 만드는 법을 멋지게 터득했다.
266~267쪽
오페라에서 작곡가는 순수 기악 음악은 허락하지 않는 자유를 누린다. 청중은 드라마를 위해서라면 음악의 구상이 치밀하지 못하고 관습을 살짝 위반해도 너그러이 넘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의 논리와 대본의 논리는 서로 느슨하게 얽히는 가닥으로, 드문 순간에만 완벽하게 합쳐지는 가닥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곡가는 자유를 누리는 대가로 애초에 음악과는 무관한 형식을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굽혀야 한다. [...] 오페라 부파는 가장 학구적인 형식만큼이나 엄격한 훈련의 장이 됐고, 고전적 양식의 가장 결정적이고 서로 연관되는 두 측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나는 극적 사건을 대칭적으로 해결되는 닫힌 형식 내에 통합하고, 이런 형식을 본질적인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확장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은 악절의 아티큘레이션을 통합하여 재빠르게 움직이고 분절된 거대한 리듬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내적 종지를 넘어 계속 누적되는 힘을 활기찬 충동에 실어줄 수 있었다. 이렇듯 사건(개별적인 행동)의 감각이 마련되고 거의 체계적인 강렬함을 구사하는 새로운 기법을 갖춤으로써, 고전적 양식은 마침내 무대가 아닌 맥락에서도 드라마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279쪽
하이든의 교향곡이 자연 그 자체에서 비롯된 듯한 단순함을 보이는 것은 가식이 아니라, 모든 작곡 기법을 완전하게 장악해서 수준 높은 예술의 외양을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 양식에 도달했다는 징표다. 목가는 일반적으로 아이러니하다. 자신이 누려 마땅한 것보다 더 작은 것을 열망하면서 그보다 더 많이 인정받기를 희망하는 자의 아이러니를 보인다. 그러나 하이든의 목가적 양식은 이런 아이러니를 갖고 있으면서 한결 넉넉하다. 예술이 쟁취한 순진함과 단순함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숭고할 수 있다고 경쾌하게 주장하는, 진정으로 용감무쌍하게 목가적인 양식이다.
313~314쪽
모차르트는 오페라 세리아의 많은 관습들과 모든 힘들이 나아갈 바를 오페라 부파의 틀 내에서 찾음으로써 이를 변모시켰다. 오페라 세리아의 역사에서 항상 드러나는 낡은 고전극 모델을 거부함으로써 그는 오페라를 극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만들었다. 모차르트는 비단 징슈필에서만 신고전주의 프로그램을 망친 것이 아니다. 오페라 세리아의 최고 업적들을 오페라 부파의 살아 있는 전통에 성공적으로 접목하여 순수하게 진지한 음악극 장르의 이상도 파괴했다. [...] 모차르트의 성숙한 오페라가 이룩한 성취들은 모두 대체로 부파 전통과 세리아 전통의 융합이다. 두 전통의 구분은 때로는 극적 대조를 가져오려고, 때로는 하층적 성격과 귀족적 성격을 구분하려고 이후의 오페라에서 계속 유지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의 음악은 완전하게 종합된 세계에서 벌어졌다.
이런 융합을 이룬 첫 번째 걸작은 <피가로의 결혼>이다. 다 폰테는 이 작품으로 모차르트와 자신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볼거리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오페라 부파에서는 유례가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진지하다. 그리고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겠지만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긴 오페라여서 [...] 이전의 오페라 부파에서는 결코 시도되지 않았던 길이와 진지함을 유지하기 위해 모차르트는 말 그대로 새로운 감각의 극적 연속성을 만들어내야 했다.
360~361쪽
우리는 이런 식의 창조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자유일까, 규칙에 굴복한 것일까? 특이함일까, 고전적 자제일까? 방종일까, 예의를 차린 것일까? 모차르트는 다른 어떤 작곡가도 넘볼 수 없는 비율 감각과 극적 적절함으로 곡을 쓸 때마다 자신이 새롭게 다시 설정한 규칙에만 속박된다. 그의 협주곡들은 전통적인 협주곡 형식과 보다 현대적인 소나타 알레그로를 독창적으로 결합한 것이 아니다. 독주와 오케스트라의 대조라는 전통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하되 장르의 극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소나타 양식의 패턴이 아니라 비율과 긴장을 중심에 놓고 독자적으로 창조한 것이다.
530쪽
<돈 조반니>의 코믹한 측면은 그와 같은 논쟁이 원래 그렇듯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는 논쟁을 낳았다. <돈 조반니>는 비극인가, 희극인가? 이렇게 물으면 어떤 대답도 옳지만, 18세기 오페라 관습에서 장르의 중요성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묻자. <돈 조반니>는 오페라 세리아인가, 오페라 부파인가? [...] 큰 규모의 리듬에 속도감이 있고 오페라 세리아의 위엄에 찬 표현 대신에 행동을 강조하는 오페라 부파 덕분에 <돈 조반니>는 아리아에서 중창곡으로 아찔한 속도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서는 공포의 순간과 연민의 순간이 한층 날카롭게 부각된다. 오페라는 첫 몇 분에 톤을 확립하고 대조를 마련한다. 레포렐로의 코믹한 불평이 재빠르게 결투로 넘어가고, 기사장이 죽을 때 피아니시모 삼중창이 공포를 노래한다. 오페라 세리아는 도저히 이런 속도로 움직일 수 없다. 코믹한 보폭은 이런 효과에 극히 중요하지만, 그 결과물은 결코 코믹하지 않다.
535~536쪽
거의 모든 예술이 전복적이다. 예술은 기성의 가치를 공격하고 자신이 만든 가치로 대체한다. 사회의 질서 대신에 자신이 만든 질서를 세운다.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하게 도발하는 측면은 이런 공격성이 표면에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여러 면에서 모차르트의 작품은 그가 창조에 관여한 음악 언어에 대한 공격이다. 그가 그토록 수월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막강한 반음계는 그의 형식이 의미를 갖는 데 꼭 필요한 조성적 명료함을 종종 파괴할 뻔하기도 했다. 낭만주의 양식에, 특히 쇼팽과 바그너에게 진정한 영향을 미친 것은 이런 반음계 진행이었다. [...] 베토벤의 공격은 무지막지했다. 어떤 예술도 자신과 다른 조건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모차르트는 베토벤만큼이나 순순하지 않았지만, 그가 작곡한 그토록 많은 음악의 순전히 물리적인 아름다움, 예쁘장함이 그의 예술의 비타협적인 특징을 보이지 않게 가린다. 그의 음악이 당시에 자주 일으켰던 불편함과 낭패감을 되새기지 않고는, 그리고 그의 음악이 여전히 위험해 보일 수 있는 상황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고는 그의 음악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573쪽
하이든의 피아노 삼중주들은 이렇듯 사실상 독주곡이나 마찬가지여서 최고 수준의 곡이 될 수 있었고, 하이든 작품에서 거의 독보적이고 위대한 세 고전주의 작곡가의 어떤 곡에서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즉흥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이든은 곡을 쓰려면 피아노가 있어야 했던 작곡가였다. 이런 삼중주들은 하이든이 작업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하다. 그가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추구하지 않았던 자발적인 느낌이 있다. 영감은 여유롭고 자연스러워 보이며, 사중주나 교향곡과 비교하면 체계가 없어 보일 때도 있다. 형식 또한 한층 여유롭다. 상당수 곡이 피날레가 춤곡—미뉴에트나 독일 농민 춤곡—이며, 몇몇 첫 악장은 하이든의 가장 뛰어난 이중 변주곡으로 꼽을 만하다.
596~597쪽
음악의 기능은 표현일까, 찬양일까? [...] 음악에서 이런 모순은 미사의 첫 곡과 마지막 곡에서 가장 민감하게 느껴진다. 음악이 본질적으로 찬양이라면 이런 섹션은 화려하고 당당해야 한다. 표현적이라면 조용하고 애원하는 성격이어야 한다. 찬양의 전통이 더 오래된 것이었고, 이것은 실행에 여전히 강력한 힘을 행사했지만 1700년대가 되면 미학 이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18세기에는 ‘키리에’와 ‘아뉴스 데이’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쾌활한 음악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음악이 ‘키리에 엘레이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라는 가사가 뜻하는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면, 당시 대부분의 미사곡은 부적격한 것으로 판단돼야 했다. 작곡가들은 대체로 고집스럽게 표현 미학을 따르기를 거부했으며, 바흐는 웅장하면서 동시에 간구하는 ‘키리에’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617~618쪽
베토벤이 ‘고전주의’ 작곡가냐 ‘낭만주의’ 작곡가냐 하는 질문은 대체로 정의하기가 곤란하며,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19세기 초에 누구보다 자주 ‘낭만주의’ 작곡가로 불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베토벤의 살아생전에 이런 질문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오늘날에도 이것이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사람은 자신의 시대에 속한다는 말은 도움이 못 되는 동어반복이며, 역사의 시간을 날짜로 제한할 수는 없다. 모든 시대는 반동적인 힘들과 진보적인 힘들이 교차한다. 그에 따라 베토벤의 음악에는 기억들과 예견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하나의 꼬리표를 부착하기보다는 베토벤이 어떤 맥락과 배경에서 가장 풍부하게 이해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낫다.
637~638쪽
근본적인 고전적 비율(클라이맥스의 보폭, 화성의 긴장과 해결의 비율)을 바꾸지 않으면서 크기를 대거 확장하려면 길고 규칙적이고 완전한 모차르트의 선율로 곡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하이든 방식으로 짧은 모티브를 처리하는 것에 바탕을 두어야 했다. 짧은 모티브를 활용하면 하이든보다 훨씬 큰 큰악절 조직을 수월하게 구성할 수 있었고 화성의 움직임은 당연하게도 느려졌다. 완전한 선율은 큰악절과 전체의 비율을 유지하려면 훨씬 더 길게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은 브루크너보다 빠른 보폭으로 움직여야 하는 교향곡 양식에서 문제가 되었다. [...] 그 자체로 완전한 전체를 이루는 악상, 이른바 곡조라고 하는 것은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형식을 극적으로 확장할 때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물론 모차르트의 비율은 최고로 적절하다. 발전부와 재현부의 관계에서 베토벤은 하이든보다 모차르트를 따를 때가 더 많았고, 베토벤의 거대한 코다는 토비가 생각한 것처럼 하이든을 모방한 것이라기보다는 모차르트식의 균형을 복원한 것에 가깝다.
696~697쪽
베토벤은 갈수록 음악 재료를 근본적인 조성 관계에서 직접적으로 가져왔다. 그는 대규모 작품에서 어떤 대목에 이르면 장식적 요소들과 심지어 표현적 요소들도 음악 재료에서 모두 걷어내고자 했다. 그 결과 조성 구조의 일부가 한순간 적나라하게 바로 드러나며, 작품의 다른 곳에서 역동적이고 시간적인 힘으로서 작용하는 조성 구조의 존재감이 갑자기 환히 밝혀진다. 이렇게 그가 조성 언어의 가장 단순한 단위와 요소를 갈수록 더 많이 사용한 것은 그의 발전을 전체적으로 볼 때 명백하게 일관성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의 많은 음악이 거칠게 들린다는 점, 그가 대중과 연주자 모두의 욕망과 심지어 필요조차 무자비하게 묵살했다는 점, 그가 외롭게 홀로 입장을 고수했다는 점, 이런 것은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의 고집스러움, 그의 별난 성격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E.T.A. 호프만에게 그랬듯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그의 이타성, 그의 ‘냉철함’, 요컨대 그의 논리를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이런 논리는 그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손을 통해 넘겨받았고 바로크 성격의 일부를 여전히 갖고 있던 두 형식인 푸가와 변주곡을 변형시킨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712쪽
적어도 르네상스 이후로 사람들은 예술을 과학과 보완하여 우주를 탐험하는 방법으로 여겼다. 어느 정도 예술은 자신만의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예술의 우주는 바로 자신이 만들어낸 언어다. 그 언어의 본질과 한계를 탐험하고 탐험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달라진다. 베토벤은 아마도 음악의 이런 탐구적 기능을 다른 모든 기능보다 우위에 둔 최초의 작곡가였다. 즐거움, 가르침, 때로는 표현보다도 탐험을 우위에 두었다.
732~733쪽
일반적으로, 베토벤의 독창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그가 어려서 배운 관습을 좌절시킬 때가 아니라 당대의 경험이나 기대를 뛰어넘도록 관습을 과장할 때라고 말할 수도 있다. [...] 더 주목할 점은 어려서 배운 전통적인 형식의 절차를 생의 말년까지 간직했다는 사실이다. 베토벤은 혼자서 18세기 말의 양식을 계속 이어가며 새로운 시대의 감성으로 승화시키고 다시 만들어냈다.
759쪽
베토벤은 표현의 형식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음악 언어 자체가 부각되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관습을 기본적인 핵심 기능만 남도록 발가벗겨 그 안에 잠재된 힘을 표출한다. 베토벤이 화성의 관습을 다루는 방식은 변주곡의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흡사하다. 그러니까 그의 목표는 장식을 가하거나 변화를 주기보다는 그 바탕에 있는 골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청자가 음악의 관습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을 듣게 만든다.
761쪽
조각가들은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돌 안에 숨겨진 형태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아마도 가장 자주 인용된 것은 미켈란젤로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베토벤은 음악 언어 안에 파묻혀 있는 의미와 감정들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은유가 비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은 그의 작품을 듣는 경험을 설명하는 것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청중에게 주목하며 듣기를 요구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그의 음악은 학계의 음악분석이 체계를 잡아가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795~796쪽
대다수 혁신가들은 과거를 잊거나 거부하려고 애쓴다. 본인이나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의 모델에 의존했을 때에도 말이다. 역사상 베토벤보다 혁신적이었던 작곡가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초기작 이후 두 세기 동안 만들어진 음악의 본질과 성격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지만, 하이든은 말할 것도 없고 쇼팽, 슈만, 리스트, 베르디, 바그너, 쇤베르크, 버르토크, 스트라빈스키보다도 자신이 물려받은 양식의 근본적인 원칙을 바꾸기 위해 한 일이 많지 않다. 이것은 역설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의 독창성을 솔직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18세기 전통의 어떤 부분도 거부하지 않았다. [...] 베토벤의 가장 큰 혁신—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은 양식을 전례 없이 확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떤 작곡가보다 당대 조성 언어에 잠재된 가능성을 잘 이해했고, 그것을 활용하여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래서 그를 분류하는 데 항상 문제가 생긴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베토벤이 위대한 전통을 망치고 왜곡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께 분류했다. 보다 최근의 비평가들은 베토벤을 새로운 시대의 선두 주자로 생각한다.
816쪽
양식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표현의 방식이 아닐 때 과거의 연장이라는 새로운 삶을 얻는다. 죽음 이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예술을 통해 그 시대를 되살릴 수 있다고, 과거의 관습 내에서 계속 작업함으로써 과거를 언제까지나 이어갈 수 있다고 상상한다. 지나간 역사를 다시 산다는 이런 착각을 유지하려면 양식이 정말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관습은 어디까지나 관습적으로 남아야 하며, 형식은 과거를 일깨운다는 새로운 책임을 떠맡기 위해 원래의 의미를 버려야 한다. 이런 화석화 과정은 그 대가로 존경을 보장한다.
■ 지은이
찰스 로젠 Charles Rosen
1927년 미국 뉴욕에서 러시아 유대인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2012년 세상을 떠났다. 모리츠 로젠탈을 사사했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 공부와 피아노 연주 활동을 병행하다가 뒤늦게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다. 바흐와 스카를라티, 베토벤, 그리고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카터, 불레즈 등 20세기 작곡가들의 음악을 녹음했다.
저술 활동은 한참 뒤에 시작하여 1970년부터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1971년에 그의 출세작인 『고전적 양식』이 출간되었고 이듬해에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그가 남긴 저술로 『소나타 형식』(1980, 1988), 『낭만주의 세대』(1995), 『피아노 연주에 관한 7가지 테마』(2002)(국내에 번역본이 나와 있다) 등이 있다. 하버드 대학, 시카고 대학, 스토니브룩 대학,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1년 인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백악관에서 ‘국가 인문학 훈장’을 받았다.
■ 옮긴이
장호연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음악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음악과 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뮤지코필리아』, 『스스로 치유하는 뇌』, 『기억의 과학』, 『사라진 세계』, 『리얼리티 버블』,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베토벤 심포니』, 『하얗고 검은 어둠 속에서』, 『클래식의 발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도서명 | 고전적 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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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찰스 로젠 |
출판사 | 풍월당 |
크기 | 152x215mm |
쪽수 | 840쪽 |
제품구성 | 양장 |
출간일 | 2021년 1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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