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월당 매장과 홈페이지에서 구입하시는 모든 분들께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이 담긴 스티커를 드립니다. (소진시까지)
■ 책 소개
“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최초의 추상화를 그린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는 혁신적인 천재였지만 완전히 잊혔던 화가입니다. 그런데 겨우 3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그녀의 존재와 그녀의 그림들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녀는 최초로 추상화를 그린 화가입니다. 그래서 그녀 앞에 붙는 가장 중요한 한 줄의 글은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는 문구입니다. 즉 지금까지 칸딘스키 등을 추상화의 원조로 명기하는 미술사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아프 클린트는 칸딘스키보다도 앞서서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 그녀가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단 하나의 이유,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거듭되는 혁명과 세계 대전 등의 혼란을 겪으면서, 현대 미술의 흐름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대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르의 관점에 따라서 세계 미술이 규정되어 버립니다.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 시야가 좁거나 편견을 가지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바르는 추상미술을 규정하면서, 그것의 창시자로서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등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당시 그들보다도 비슷한 시기에 혹은 더 먼저 추상화를 그린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르의 찬사에서 여성을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남성이 지배하는 미술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 여성 화가”
그녀는 유복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림도 잘 그렸지만,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이나 선지학 등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던 지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유럽의 미술 아카데미들 중에서 여성의 입학을 거부하는 곳들이 여전히 많을 때였지만, 그녀는 스톡홀름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습니다. 화가가 된 그녀는 가장 시대를 앞서는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권위적인 미술계에서 그녀는 여성이기에 늘 차별을 당했습니다. 200명의 미술아카데미 회원들의 그림을 함께 전시하는 행사에서 그녀의 그림은 전시장의 가장 후미진 구석, 즉 계단참과 비상구 옆에 단 두 점만 걸렸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그림
이런 부당한 대우 속에서 그녀는 미술협회를 탈퇴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녀는 혼자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녀는 기존의 미술계와 결별하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으로 시대를 초월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팔기 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평가받고 영구히 전시될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동시대에서는 자신의 그림을 알아줄 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그림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죽고 20년이 지난 후 그림을 개봉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1932년에 70세가 되자 히마는 자신의 모든 그림을 스스로 정리합니다. 많은 기록과 메모를 없애고, 그림은 다시 분류하여 정리합니다. 그러면서 공책에 연필로 +X라는 표시를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표시가 된 그림은 내가 죽고 나서 20년이 지난 후에야 개봉하라"라고 적어 넣습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타임캡슐에 넣어서 우주로 보내거나 지하에 파묻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그녀의 모든 그림들은 조카인 스웨덴 해군 중장 에릭 아프 클린트 제독에게 상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카는 고모의 유언을 성실하게 이행하였습니다. 즉 그는 고모의 그림들을 누구도 손도 닿지 않게 안전하게 보관하였고, 20년이 지난 후에 밀봉했던 상자들이 열렸습니다.
미술교과서에도 미술사 책에도 나오지 않는
화가의 회고전에 60만 명의 관객이 몰리다!
2018년 뉴욕의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은 이 미술관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인 60만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미술 교과서에도 미술사 책에도 나오지 않는 화가의 전시회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화집은 미술관 개관 이래 가장 많이 팔린 도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열린 순회 전시에는 모두 1천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그녀의 그림을 보러 왔습니다. 단 한 번의 전시회로 지금까지의 미술사나 미술 교과서는 수정되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먼저 추상미술을 시작하였고, 누구의 그림보다도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제 모두가 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힐마 아프 클린트의 열풍!
곧 한국에도 이어질 것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에 대한 관심은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 그녀는 아직도 거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생애 후반의 비극적인 사생활과 신비적인 일화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독자분들이 평적을 읽어 가면서 실로 흥미진진한 한 예술가의 일생과 더불어 시대를 잘 못 타고난 한 불행한 여인의 장엄한 생애를 접해보시기 바랍니다.
한 예술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은 한 사람과 그의 생애를 아는 것일 뿐 아니라, 한 시대와 사회를 아는 것이고, 나아가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평전의 가치일 것입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총명하고 빼어났기에 세상에서 버림 받은 여성을 그린 책이 놓여있습니다. 한 여인의 소망과 영광과 찢어지는 고통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 출판사 서평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재발견, 힐마 아프 클린트
힐마 아프 클린트는 현대미술사에서 이루어진 재발견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2018년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은 개관 이래 최다 관객수를 기록했다. 전시 도록은 미술관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도서가 됐다. 2019년부터는 아프 클린트의 그림이 뉴욕 현대미술관의 신소장품 전시관에 대여 작품 형식으로 전시되며 미술사의 아웃사이더가 일약 스타로 도약했다.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보다 추상화를 먼저 시작한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는 그전까지 기존 미술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아프 클린트의 이례적인 그림은 미술관을 찾아온 미래 세대에 의해서야 널리 공유되고 퍼졌다. 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이 여성 화가를 움직이게 만든 동기는 무엇인가? 그녀가 달성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누가 미술사를 쓰는가? 누가 배제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그리다
다윈의 진화론 발표, 원자의 존재 증명, 뢴트겐 발견, 현미경과 백열전구 발명….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로써 그동안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정신세계나 영혼을 믿었던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강력하게 작동하여 인간과 세상을 구성한다고 확신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지학’ 혹은 ‘인지학’을 만들었다. 20세기 초에 추상 미술을 시작한 현대미술의 인물들은 그 정신을 중요시하는 흐름에 동조했거나 주목했던 사람들이다.
그 흐름의 한가운데 힐마 아프 클린트가 있었다. 그녀는 독자적인 영성주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과 소양이 높은 예술가였다. 영성주의와 과학지식을 조화시키려 했으며, 그 우주관을 그림으로 남겼다. 아프 클린트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그렸다.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녀가 그린 것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현실에 속하지 않았다. 아프 클린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존재할 수도 있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녀의 작품은 대상이나 경계선 안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향했다.
배제된 여성 화가들과 기록되지 않은 ‘추상의 역사’
그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조지아나 휴튼, 힐마 아프 클린트 등 여성 화가들은 추상 미술의 시작을 선도했다. 그러나 여성은 끝내 추상 미술의 역사에서 배제되었다. 스웨덴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던 무렵이었고, 아카데미에서 오직 남자만이 선생으로 임용되던 시절이었다. 여성 미술가의 작품은 미로처럼 얽힌 전시장의 가장 후미진 구석, 계단과 비상구 옆으로 처박히듯 밀려나곤 했다. 화가 카를 라르손의 아내인 카린은 한때 스톡홀름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화가가 되려고 했지만, 카를 라르손과 결혼한 후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박탈당하고, 남편이 그리는 그림 속 모델로 전락했다.
혁명과 세계대전이라는 급박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미술의 주도권은 미국 뉴욕으로 넘어간다. 그때부터 미술의 흐름은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르의 관점에 따라 결정된다. 추상 미술은 이후 수십 년간 형식주의적 실험으로 간주되고,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쿠프카가 그 고안자로 ‘선포된다’. 그곳에 여성을 위한 자리는 없다. 추상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던 영성주의적이고 여성적인 비이성이 제거되고, 남성적인 이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한 형식 실험으로서의 추상 미술이라는, 해석의 주도권이 넘어간다.
다음 세대로, 미래로 시선을 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마 아프 클린트는 단 한 번도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거절은 하나의 시작이 되었다. 그녀는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술관에 영구 소장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언제든 꺼내어 보여 줄 수 있게끔 작은 앨범에 자신의 그림을 축소해 옮겨 그려 아카이빙했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당대 미술계에 작별을 고한다. 회화사에서 한 자리를 확고하게 차지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도모한다. 성, 계급, 물질주의, 자본주의, 동방과 서방이라는 이분법적 생각 등 굳어 버린 사고 형태와 경직된 질서 체계를 타파하고자 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대신 다음 세대를 택한다. 그녀는 자기 작품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동시대인의 의미를 의심하고 결정했다. 1932년, 힐마 아프 클린트는 공책에 연필로 +x라는 표시를 하고 아래에 설명을 적어 넣었다. “위의 표시가 있는 모든 작품은 내가 죽고 20년이 지난 다음에 개봉되어야 한다.” 그녀의 작품은 타임캡슐에 담겨 미래를 향해 쏘아 올려졌다. 추상 미술의 역사를 시작한 작품에 대한 이해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삶을 개척한 인물에 대한 평가도, 모두 미래 세대의 몫이 되었다.
미래 세대의 눈으로 미술가의 생애를 조망하는 일
힐마 아프 클린트가 넘겨 준 바통은 이제 우리 손에 쥐어졌다. 작품을 잘 감상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뿐만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 낸 개인과 그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의 삶은 아주 오랫동안 대화의 주제가 아니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여성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품은 물론 화가 개인까지 과소평가되었다. 작품의 생성, 역사, 사건 혹은 다른 미술가와 그 미술가의 작품과 연관된 관계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미술은 순식간에 개인적인 일처럼 보이게 된다. 정보와 문맥, 주변 환경이 없으면, 작품 전체는 축소된다. 그 결과 작품은 점점 작아져서 조망할 수 없게 되고 무의미해진다.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은 광범위한 조사를 기반으로 예외적인 미술가의 이례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예술가의 판에 박힌 모습과 신화를 파괴한다. 이 책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생애로 들어서는 열쇠가 되어 현재가 된 미래로 과거를 생생히 데리고 올 것이다. 배제된 역사로 시선을 돌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당신의 몫이다.
“나는 아주 작고 하찮지만,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거대한 힘이 내 안에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
■ 책 속에서
34쪽
하지만 그녀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녀가 붓으로 창조한 것 중 무엇도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현실에 속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존재할 수도 있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녀의 작품은 대상이나 경계선 안쪽을 다루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에는 삶이 왜곡되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윙윙거리고, 붕붕거리고, 회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129쪽
목까지 단추를 채운 옷을 입은 힐마 아프 클린트는 작은 천 말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남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그린다. 그녀를 비롯한 십수 명의 여자 학생이 주기적으로 남자 모델을 쳐다본다. 이는 미술사를 뒤집는 배치다. 옷을 입은 여성이 벌거벗은 남성을 그리는 것. 그 장면은 어떤 전통에 근거를 둔 것인가? 많은 남성 화가와 교수들은 이것을 꼴사납고, 자연에 반하며, 기괴하다고 평가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유럽의 다른 곳에 있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는 계속 여성을 거부했다.
139~140쪽
힐마 아프 클린트는 왕의 딸에게 보통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간청하듯 관람자의 시선을 찾는, 공포에 질려 크게 확장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녀가 그린 안드로메다는 머리를 바다 쪽으로 돌린다. 그녀는 냉정하고, 신중하며, 바다 괴물 따위를 믿지 않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시도하는 선장처럼 전문적으로 행동한다. 눈물도 없고, 애원하지도 않으며, 발을 흔들거나 몸을 꼬지도 않는다. 안드로메다의 태도에는 생명이 위협을 받는 처지에 있다는 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는 몸을 꼿꼿이 세운 상태로 있다. 희생자 모습에서 여성 영웅이, 상황을 통제하는 주인이 생겨났다. 기나긴 미술사에서 그전에는 아무도 바다 괴물을 기다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공주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352쪽
그에 반해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미로처럼 얽힌 전시장의 가장 후미진 구석, 계단과 비상구 옆의 작은 공간 두 곳으로 처박히듯 밀려났다. 협회 회원을 한 사람도 배제하지 않기 위해 벽에는 총 2백 점에 달하는 그림이 촘촘히 걸렸다. 아프 클린트는 탈퇴한 후로 더 이상 회원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그림 한 점이 전시된다. 하지만 그 그림을 찾기란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425~426쪽
이 화가의 삶은 그런 무모한 싸움이 아닌가? 힐마 아프 클린트는 64세지만,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뭐든 일단 시작하고 보는 재능 속에 있는 그녀의 최대 장점을 잃지 않았다. 모든 거절은 하나의 시작이다. 모든 끝 역시 하나의 시작이다. 이 화가에게는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필요한 인내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녀는 계속해서 인내심을 시야에서 놓치고, 인내심은 썰물처럼 사라진다. 하나의 계획은 다음 계획으로 이어지고, 계속해서 그녀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양식으로 새로운 영역을 열어젖힌다.
505쪽
같은 시기 대서양의 다른 쪽에서 분명하게 비구상적 회화를 위해 문이 활짝 열리고 있음을 스톡홀름에 있는 화가는 아직 알지 못했다. (…) 이제부터 뉴욕에서 형성될 미술의 경전은 알프레드 바르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결정한다. 추상은 앞으로 수십 년간 형식주의적 실험으로 간주되고,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그리고 쿠프카가 고안자로 선포된다. 영성적 존재, 영성적 가치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여성을 위한 자리는 없다.
■ 지은이
율리아 포스 Julia Voss
2005년 훔볼트 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편집 책임자로 일했다. 2009년에 ‘독일 시문학과 언어 아카데미’가 뛰어난 학술적 산문을 선정해서 수여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상’을 수상했다.
현재 니더작센 주 뤼네부르크에 있는 로이파나 대학에서 명예 교수로 재직하며,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존탁스차이퉁』에 ‘율리아 포스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예술 칼럼을 쓴다. 2021년에는 베를린 역사 미술관Deutsches Historisches Museum에서 개최된 〈도쿠멘타. 정치와 예술〉의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다. 지은 책으로 『다윈의 그림들. 진화론의 견해들. 1837~1874』, 『찰스 다윈 입문서』, 『하얀 벽 뒤』 등이 있다.
2008년 스톡홀름에서 처음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을 본 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그 그림들에 관한 글을 썼다. 아프 클린트 문서 보관소를 방문한 후, 스웨덴어를 배우고 이 화가의 삶의 이력을 조사하기로 결심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은 율리아 포스가 힐마 아프 클린트가 작성한 125권의 공책을 집중 탐구하고, 스톡홀름·룬드·암스테르담·피렌체·런던·스위스에 있는 여러 문서 보관소에서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 옮긴이
조이한
1989년 성신여자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에 독일로 유학하여,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남성학)을 공부했다. 2005년에 인하대학교, 경원대학교 대학원, 성균관대학교,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서양미술사와 현대미술이론, 젠더와 미술 등을 강의했다. 현재는 한국전통문화대학 교양학부에서 ‘성과 젠더’, ‘동서미술 감상법’, 한겨레 문화센터·세종 아카데미·상상 아카데미·에이트 인스티튜트 등에서 ‘미술사’, 서울 자유 시민대학, 한국 양성평등원, 경기도 여성가족연구원에서 ‘젠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트 에세이스트로 『서울신문』에 ‘열린 세상’ 칼럼을 쓴다.
『천천히 그림읽기』(공저), 『그림에 갇힌 남자』, 『위험한 미술관』,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화가, 고야』,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뉴욕에서 예술 찾기』, 『그림, 눈물을 닦다』, 『젠더. 행복한 페미니스트』,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고,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공역), 『이 그림은 왜 비쌀까』(공역), 『눈의 지혜』(공역), 『예술가란 무엇인가』(공역), 『아틀라스 서양미술사』(공역), 『한 가족의 드라마』(공역)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김정근
연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문화 예술 전반에 대해 다양한 관심을 갖고 연구와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2002년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을 독일 한국학 학자 헬가 피히테Helga Pichte와 함께 독일어로 옮겼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공역), 『공간의 안무』, 『여자 그림 위조자』(공역), 『예술이란 무엇인가』(공역), 『아틀라스 서양미술사』(공역), 『모든 것은 소비다』(공역), 『베를린 거리의 아이들』, 『한 가족의 드라마』(공역)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 추천사
“사람들은 더 이상 추상 미술의 출발에서 힐마 아프 클린트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율리아 포스가 이 책에서 그 이유를 보여 준다.” - 플로리안 일리스(『1913년 세기의 여름』 지은이)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은 과거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우리에게 속해 있다. 그 작품의 역사가 이제 시작된다.” - 『뉴욕 타임스』
“신기원을 여는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점점 더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개인사는 오랫동안 생략되고 오해를 받으며 어둡게 감추어져 있었다. 율리아 포스의 엄격한 조사와 명확하고 생생한 서술이 정확히 지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탄생시켰다.” - 트레이시 배쉬코프(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
도서명 |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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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율리아 포스 |
출판사 | 풍월당 |
크기 | 140x213mm |
쪽수 | 624쪽 |
제품구성 | 양장 |
출간일 | 2020년 1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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